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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남자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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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은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일까? 

아주 중요한 순간에 전혀 상관없는 생각을 하게 되는 이유는 그 상황을 외면하고 싶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냥 뜬금없이 생각나기 때문일까? 

지금, 채은서, 상황에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몇 시지?’



벽에 걸린 시계가 보이지 않는 각도였다. 그렇다고 시계를 보자고 잠깐 하던 걸 멈추자고 할 수도 없다. 왜 갑자기 시간이 궁금하냐고?



‘알바 여섯 시에는 가야 한다고 했는데 지금 몇 시지? 

다섯 시에 깨우면 저녁 먹고 시간이 딱 될 거라고 했는데 이러다가 저녁도 못 먹고 가는 거 아닐까?’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저녁을 먹겠어요? 아니면 날 먹겠어요?’이렇게 물어볼 수 없지 않은가. 

게다가 이 남자, 지금 열중하고 있다. 아주 뜨겁게 열중하고 있다. 

그리고 그녀 역시 숨 가쁘게 그 뜨거움을 받아들이는 중이다. 이 뜨거움이 끊어지는 것은 싫다.



‘저녁은 포기. 그냥 가다가 햄버거나 사먹으면 되지.’



결국은 성욕 앞에서 식욕이 두 손을 들어버린다.



“하읏…!” 



깊게 숨을 들이마시는 이한의 입술에 빨려지며 은서가 크게 등을 휘었다. 짜릿하면서도 생생한 느낌에 그녀가 소리를 참을 수 없었다. 

애써 영화에서 보던 그런 야한 소리를 내려한 것은 아니지만 소리가 알아서 저절로 나오는 것이다. 

그런 소리를 자신이 내고 있다는 게 창피하긴 했지만 이한의 혀가 그녀의 입구 근처를 건드리는 것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자극적이었기 때문이다. 



이한의 입술이 그녀의 예민한 꽃잎을 건드릴 때마다 뜨겁고 짜릿한 감각이 그녀의 전신으로 부서져 나갔다. 

이제 그녀의 입술에서는 뜨겁고 가쁜 숨소리 외에는 나오지 않았다. 

몸은 뜨겁고 입술은 정신없이 신음을 내뱉고 이한의 손에 눌린 허벅지가 바들바들 떨어댔다.



“으응… 응…!”



이한의 혀가 쉬지 않고 애무할 때마다 그녀의 입안이 바짝바짝 말라갔다. 

혀로 해주는 애무도 좋지만, 애무를 받으면 받을수록 그녀의 몸이 더 깊은 것을 원하는 것이다.



더 깊은 것. 이심전심이었던 걸까? 아니면 이한도 슬슬 한계에 도달했던 것일까? 

그녀의 다리 사이에서 얼굴을 들어올린 이한의 손이 그녀의 허벅지를 조금 더 세게 눌렀다. 

완전히 벌어진 그녀의 허벅지 사이로 단단하고 뜨거운 것이 느껴진다. 준비가 끝난 것이다. 아니다, 아직 준비는 안 끝났다.



“하아… 하아.”



이한이 머리맡으로 손을 뻗어 콘돔을 집어 들고 준비를 하는 사이에 은서가 가쁜 숨을 헐떡였다. 


문득 그녀가 생각했다. 저 콘돔은 어디서 난 걸까? 

분명 콘돔은 하나밖에 없지 않았나? 

그렇다면 저 콘돔은 하늘에서 솟았단 말인가? 

아니면 지갑에 예비용으로 몇 개 더 넣고 다니나? 



그녀가 살짝 고민하는 사이에 이한이 준비를 마쳤다. 진한 딸기향이 그녀의 코를 스친다. 

그건 분명 딸기향이었다. 그 딸기향에 이한도 당황하는 표정이다.



‘콘돔에서 향도 나네?’


‘일반적인 걸로 달라니까.’



이 야릇한 순간에 번지는 딸기향에 두 사람이 잠시 어색했지만 그것도 잠시. 딸기향을 머금은 단단한 물건이 그녀의 다리 사이로 밀려 들어와 그녀의 입구를 꾹, 하고 찔렀다.



“으응…!”



찌르는 감각에 놀란 그녀가 몸을 들썩이자 이한이 손으로 그녀의 허벅지를 누른다. 

허벅지가 눌리며 벌어진 입구 안으로 순식간에 뜨거운 것이 파고 들어왔다.



“하읏…!”



다리에 힘이 들어가며 반사적으로 그녀의 엉덩이가 들려 올려지자 그녀의 엉덩이를 손으로 잡은 채 이한이 곧장 그녀의 깊숙한 안까지 자신의 분신을 밀어 넣었다.



“앗, 아앗!”



제일 깊은 안쪽으로 찔러 들어오는 열기에 은서가 이한의 등을 끌어안았다. 

그의 등이 미끈거리는 땀으로 젖어 있었다.



5월. 덥기에는 이른 시기이지만, 지금 그녀의 침실 안은 후끈한 열기가 가득했다. 

이한이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하자 뒤엉킨 두 사람에게서 열기를 실은 거친 숨소리가 헐떡이며 터져 나왔다. 

뜨거운 숨을 정신없이 토하며 이한이 그녀의 안쪽에 자신의 몸을 실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다는 건 이런 경우를 말하는 것이리라.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정신없이 내쉬어도, 내쉬어도 숨이 부족했다. 

심장이 터지던가 아니면 호흡곤란으로 죽게 될 것 같았다.



“아, 아, 앗.”



은서의 어깨와 가슴에 키스하며 이한이 격렬하게 허리를 움직였다. 

그런 그를 끌어안은 은서의 두 팔이 그의 등에 붉은 흔적을 남겼다. 

귀로 흘러들어오는 거친 숨소리를 들으며 은서가 두 다리로 그의 허리를 감는다.



격렬하게 허리를 흔들던 이한의 몸이 크게 한번 꿈틀거렸다. 그리고 그녀의 하체에 자신의 하체를 천천히 문지른다. 

그것이 마무리하는 행동이라는 걸 그녀가 그제야 깨달았다. 남자가 끝나면 이렇게 행동한다는 것을.



“하아… 하아.”

“하아… 으응.”



아직도 열기가 가시지 않은 얼굴로 이한이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 

그의 가슴에 와 닿은 그녀의 심장이 거칠게 뛰고 있었다. 

그의 심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로의 뛰는 심장 박동을 느끼며 두 사람이 다정하게 키스했다. 



끼쳐 올라오는 땀 냄새도 상관없었다. 

그저 따뜻한 살결, 그리고 뛰는 심장소리에 몸을 내맡긴 채로 두 사람이 서로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 쥐고 키스했다.

이보다 더 행복한 순간이 또 있을까, 하고 두 사람이 동시에 생각하고 있었다.



*



- 내일 새벽에 갈게요.



은서에게 그렇게 약속하고 이한이 차의 시동을 걸었다. 

다행히 늦지는 않았다. 

대신 밥 먹을 시간이 없겠지만 김밥이라도 한 줄 사서 배달 틈틈이 먹으면 된다. 

오히려 은서가 걱정인 이한이었다. 그녀 혼자 저녁을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녀가 혼자 먹는 밥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이한은 알고 있다. 

같이 저녁을 먹어주고 싶었지만 예상외로 시간이 길어진 바람에 때를 놓쳐버렸다. 

대신 내일 아침에 맛있는 걸 해주자, 생각하며 이한이 핸드폰을 누른다.



“아, 지원아. 형이야. 저녁 먹었어? 이따가 알바 마치면 잠깐 집에 들를 건데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어제 전화로 지원이에게 집에 못 들어갈지도 모른다고 미리 말은 해두었다. 

오늘은 늦더라도 집에 들어가 봐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은서에게는 내일 새벽에 가기로 한 것이다.



- 됐어. 오지 마.


“왜? 너 또 저녁 안 먹었구나? 끼니 거르면 안 된다고 형이 말했잖아.”


- 형이나 잘 챙겨 먹어. 그리고 오늘 친구들하고 만나기로 해서 나 집에 없어. 늦게 돌아갈 거야. 그러니까 오지 마.


“그래? 알았어. 너무 늦지 않게 다니고, 밤길 조심해.”


- 내가 애야? 걱정하지 말고 형이나 운전 조심해.


그 말을 끝으로 지원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뚜- 뚜- 거리는 핸드폰을 잠시 쳐다보던 이한이 주머니에 폰을 집어넣는다.

아무래도 새벽에 은서를 만났다가 아침에 잠깐 집에 들러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



“안지원, 뭐해?”



전화를 끊은 지원이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형 전화 받았어.”

“너 네 형 알바 있다고 하지 않았어? 집에 온데? 가야 하는 거야?”


“시끄럽고, 준비 다 됐어?”

“다 됐어. 목 상태는 어때?”


“좋아. 가자.”



지원이 앞장서자 그 뒤로 기타를 맨 남자가 바로 따라 붙는다. 

초저녁, 아직 해가 지기 전의 신촌 차 없는 거리에는 사람들이 꽤나 많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지원이 들고 있던 믹서와 스피커를 바닥에 놓고 케이블을 연결하는 동안에 다른 남자가 마이크 스탠드와 기타 보면대를 설치한다. 

간혹 두 사람을 알아보는 이들이 손짓하며 아는 척 하는 것을 일일이 인사해주며 간단한 세팅을 마쳤을 때 주위에는 몇 명 정도가 가던 길을 멈추고 기대어린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지원이 눈짓하자 기타를 든 남자가 가볍게 기타 줄을 당긴다. 

은은한 기타 선율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자 기다리고 있던 이들의 눈이 반짝이고 지나가던 이들 중 몇 명이 걸음을 멈추고 쳐다본다. 



주말 이곳 신촌에서 흔히 보는 풍경 중의 하나. 이름 없는 밴드 혹은 뮤지션들이 길거리를 지나는 행인들을 대상으로 펼치는 작은 공연. 

그중에는 꽤 인지도를 가지는 인디 밴드도 있지만 지원과 그의 친구가 거리로 나온 것은 고작 3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매주 토요일 저녁이면 이렇게 거리로 나와 그들만의 작은 무대를 가지는 것이다.



“Hello, darkness. my old friend.”



마이크를 잡은 지원의 입술이 열리며 흘러나오는 감미롭고 맑은 목소리에 사람들의 걸음이 멈춘다. 

반주는 기타 하나, 그리고 연주되는 것은 감미로운 목소리.



“I've come to talk with you again, Because a vision softly creeping, Left its seeds while I was sleeping.”



사람들의 시선이, 그리고 귀가 거리 한가운데 서서 노래하고 기타를 연주하는 두 명의 청년들에게 머물기 시작했다. 

솜털같이 가벼우면서도 가슴을 울리는 감미로운 음색에 노래를 듣는 이들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



“학생들인가?”



사운드와 기타를 정리하고 있는 지원과 그의 친구 민규에게 다가와 말을 건 것은 낯선 남자였다. 

지갑에서 명함을 꺼낸 남자가 지원에게 내밀었다.



“목소리 좋던데 음반 내볼 생각 없어?”



이런 제의는 많이 받았다. 지원이 처음 신촌 거리에 민규와 함께 기타를 들고 섰을 때부터 많이 받아온 제의였다. 

그만큼 듣기 힘든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공부해야 해서요. 죄송합니다.”



지원이 웃으며 명함을 거절했다.



“누가 공부하지 말래? 공부하면서 음반 작업하면 되지.”

“저 평일에는 밤 12시까지 도서관에서 공부해요. 토요일만 시간 내서 노래하는 거라서 음반 같은 전문적인 작업은 못 해요.”


“대학생이야?”

“얘 법대 다녀요.”



옆에서 민규가 말을 거든다.



“머리 좋나 보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허리를 숙여 공손하게 인사한 다음 지원이 민규와 함께 자리를 뜬다. 양손 가득 무거운 믹서와 스피커, 그리고 스탠드와 보면대가 들려 있었다. 

대여한 것들이다. 이제 이걸 다시 갖다 주고나면 주말의 일탈이 끝난다.



*



“라면 먹고 갈래?”

“그럴까?”



대여한 사운드들을 돌려주고 나오며 지원이 시계를 들여다봤다. 벌써 열 시가 넘어 있었다.



“그런데 정말 그 노래 좋아하나 봐? 한 번도 안 빠뜨리고 부르네?”



민규가 신기하다는 듯 지원을 쳐다봤다. 매번 레퍼토리가 바뀌지만 한 곡만큼은 한 번도 빠뜨리지 않고 부르는 지원이가 신기한 것이다. 

유난히 좋아하는 노래라고 민규가 생각했다.



“우리 형이 좋아하는 노래야.”

“그래?”


“그런데 형한테는 한 번도 불러준 적 없어.”

“왜?”


“그냥.”

“반항이야?”


“아니.”

“그럼 뭔데?”


“형이 실망할까 봐.”

“노래하는 거?”


“비슷해.”



두 사람의 대화가 라면 가게 앞에서 멈췄다. 가게 안에서 흘러나오는 맛있는 냄새에 두 사람이 서둘러 안으로 들어간다.

단골인 라면 가게 사장이 두 사람을 반갑게 맞아들였다.



*



천천히 걷던 지원의 발이 멈췄다. 지원의 시선이 편의점 유리창 너머를 향하고 있었다. 

그 편의점 유리창 안, 진열장에 물건을 진열하고 있는 이한의 모습이 있었다. 

지원이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로 이한을 바라봤다.



“참 지지리 궁상이다.”



지원이 작게 중얼거렸다. 형이다. 어느 날 갑자기 생긴 형이다. 

열아홉 해를 살아오는 동안 있는 것도 몰랐던 형이다. 

어머니의 장례식 날, 형이 생겼다. 모든 것은 폭풍처럼 다가왔었다.



암. 임종. 그리고 빚. 장례식.



한순간에 몰아쳐서 정신을 빼놓을 듯 다가온 모든 것들.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집주인은 집을 빼라고 하고 있었다.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에도 내내 그 생각뿐이었다.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닥친 상황은 죽음을 슬퍼할 사치도 허락하지 않고 있었다.

당장 장례식이 끝나면 돌아갈 집도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형이 나타났다.

진짜 형인지 믿고 안 믿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보호자가 필요하다는 것뿐이었다. 집과 생활을 보장해줄 보호자.



- 나하고 같이 살자. 내가 이제부터 널 책임질게.



그 말을 듣는 순간 안심이 되었다. 안심이 되자, 비로소 눈물이 났다. 

앞날이 무서워서 눈물도 흘리지 못하다가, 안심해도 된다 생각하는 순간 눈물이 났다. 

비로소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할 수 있었다.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모든 것은 형이 알아서 처리했다. 둘이 같이 살 집도, 이사도 모두 형이 알아서 했다.



- 나한테 맡기고 넌 공부나 해.



수능은 이미 끝난 상태였고 합격자 발표만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새삼 공부할 것도 없었지만 형은 몰랐다. 중학교 이후의 공부를 해본 적 없어서 대학 입시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형은 지원에 대해 몰랐고 지원은 형에 대해 몰랐다. 몰라서, 어색한 시간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어색한 형과 동생.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형과 동생. 

지원이 형에 대해 조금 알게 된 것은 얼마 후였다. 



형이 자신을 위해 복싱을 그만뒀다는 것과 알바를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지원도 합격 통지서를 받은 실용음악과를 포기하고 후기 법대에 다시 원서를 넣었다. 

형이 자신을 위해 복싱을 포기한 것처럼 그도 형을 위해 음악을 포기했다. 

형이 자신을 위해 하고 싶은 것을 포기했듯이, 그도 형을 위해 하고 싶은 것을 포기했다. 



하지만 형이 그것을 애써 말하지 않듯이 그도 형에게 애써 말할 생각이 없었다. 

형이 자신을 위해 알바를 뛰는 것처럼 자신도 형을 위해 형이 원하는 사람이 되어주기로 했다.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어색한 형제이지만, 적어도 서로를 위해 무언가 해주고 싶어 하는 형제인 것이다. 그런 형제인 것이다.



*



달칵.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선 이한이 살며시 문을 닫는다. 행여나 문 여는 소리에 곤히 잠든 지원을 깨울까 봐 조심하는 것이다. 



아직 새벽. 일어나기에는 이른 시간이다. 집안은 조용했다. 지원의 방문은 닫혀 있다. 

이한과 지원이 사는 집은 투베이룸이다. 작은 방과 거실, 그리고 욕실과 주방으로 분리된 작은 투룸인 것이다.

원룸이 보증금도 월세도 싸지만 지원을 위해 굳이 방이 하나 분리된 투베이를 고른 이한이었다.



형제라고는 해도 거의 이십년을 서로의 존재를 모르고 살았다. 

그런데 작은 원룸에서 부대끼고 살면 신경이 쓰일 것 같아서, 그리고 밤늦게까지 공부해야 하는 지원을 위해서 일부러 방이 분리된 집을 구한 것이다. 



지원에게 방을 주고 이한 자신은 거실로 쓰는 공간에서 생활한다. 

어차피 하루 중에 집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으니 상관은 없었다. 고작 두 세 시간 눈을 붙이면 그만인 것이다. 


조용히 냉장고를 열어서 몇 가지 재료를 꺼낸다. 밥솥을 열어보니 밥이 그대로다. 

이한이 집에 오지 않은 동안 혼자서 밥을 먹지 않았다는 뜻이다.



“.....”



마음이 무거워지는 이한이었다. 

자신이 은서와 꿈같은 시간을 보낼 동안 지원 혼자서 뭘 먹고 지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며 죄책감이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국이 끓는 냄비의 불을 줄이고 지원의 방 앞까지 걸어간 이한이 가만히 문을 열어본다. 



책을 읽다 잠이 든 것인지 지원이 책상에 엎드려 잠이 들어 있었다.

발소리를 죽이고 가만히 다가간 이한이 엎드려 잠든 지원을 내려다봤다.

안경을 쓴 채로 잠이 들어 있다. 

안경을 빼주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잠을 깨울 것 같아서 대신 얇은 카디건을 살며시 등에 덮어준다. 



이한은 봐도 모르는 두껍고 제목도 어려운 책이 책상에 펼쳐져 있다. 

같이 살고는 있지만 지원은 거의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하고 있다. 

등록금도 장학금으로 알아서 해결하는 것이다. 

이한이 그에게 해주는 것은 고작 집세와 세금, 그리고 밥과 반찬을 준비해주는 것뿐이다. 

용돈을 쥐어줘도 받지 않는다. 자기 용돈은 자기가 벌어서 쓰겠다고 고집을 부리기 때문이다.



‘이런 책은 비쌀 텐데.’



스무 살의 대학생이라면 분명 돈 들어갈 일이 많을 것이라고 이한이 생각했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데도 돈이 들어간다. 그런데 지원은 한 번도 돈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친구가 없는 걸까?’



지원이 성격이 싹싹하지 않다는 건 이한도 알고 있다. 

그래서 어쩌다 둘이 같이 식탁에 앉아 밥을 먹어도 오가는 대화는 한 마디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간혹 대화가 오간다고 해도 이한이 묻고 지원이 대답하는 식일 뿐, 지원이 먼저 말을 걸어오는 경우는 없다.



사람들은 이한에게 바보 같다고 말했었다. 있는 줄도 모르고 있던 동생 때문에 자신의 삶을 포기했다고 다들 바보라고 말했었다. 

자신을 고아원에 버린 어머니, 그리고 그 어머니가 낳은 동생이 뭐가 그리 중요해서 그런 선택을 하느냐고 다들 고개를 저었었다. 

하지만 그들은 모른다. 적어도 이한이라는 이 남자에게 있어서 가족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들은 모른다. 

가족이, 얼마나 고팠는지 그들은 모른다. 



사실 어머니는 기억에도 없다. 뭔가를 기억할 수 있는 나이가 되기 전에 버려졌기 때문이다.

태어난 지 몇 개월 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고아원에 버려, 아니 맡겨졌었다.

미혼모라서 아이를 키울 수 없었다고 했다. 

동거하던 남자와 헤어지고 뒤늦게 임신 사실을 알았지만 지우는 때마저 놓쳐버리는 바람에 태어난 것이 그였다.



이 사람 저 사람의 손에 맡겨진 채로 자라나며 이한이 언제나 생각한 것은 가족이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며 가족들의 그림을 그리는 친구들을 보며, 가족의 이야기를 하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는 언제나 생각했다, 가족이라는 것을. 



가족, 그 따뜻한 이름. 그러나 그에게는 주어지지 않은 이름. 입양되는 기회는 그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입양이라는 것은 운이 좋은 아이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었다. 



특별히 모자라게 자란 것은 아니다. 배를 곯거나 부족한 것은 없었다. 

그가 있던 고아원은 시설도 좋았고 후원자들이 많아서 그곳의 아이들은 늘 넉넉하게 누리며 자랄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모든 것이 풍족하고 넉넉해도 그것으로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배가 부르고 몸이 따뜻해도, 가슴 한 구석은 언제나 허전했고 추웠다. 뭔가에 미치도록 빠져들게 된 것도 그것 때문이었다.



복싱. 정신없이 달리고 주먹을 휘두를 때면 그 허전함이 잊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다시 밤이 오고 혼자가 되면 잊혀진 줄 알았던 외로움이 찾아드는 것을 되풀이하던 시간들. ‘동생’은 그럴 때 그에게 찾아온 이름이었다.



자신을 고아원에 버린 어머니에 대한 원망 같은 건 없었다. 자신이 고아원에서 자랄 동안 어머니와 함께 살아온 동생에 대한 원망도 없었다. 

동생을 처음 봤을 때 든 단 한가지의 생각은, ‘가족’이었다. 자신에게도 가족이 있다는 그 사실 하나뿐이었다. 


세상에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그 느낌을 누가 알 수 있을까. 마침내 가족이 생겼다는 그 기쁨을 누가 알 수 있을까. 

바보여서가 아니다. 희생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원하는 것을 찾은 것뿐이다. 

오랫동안 그를 배고프게 만들었던 ‘가족’이 생기는 순간 다른 것은 보다 덜 소중해진 것뿐이다. 

그에게 동생은 그런 것이다. 지원은 이한이라는 남자에 그런 것이다. 그를 세상에 혼자가 아니게 하는 유일한 가족, 그것이 안지원이다.



탁. 



이한이 문을 닫고 나가자 책상에 엎드려 있던 지원이 눈을 떴다. 이한이 그의 등에 카디건을 걸쳐줄 때 잠에서 깬 것이다.

하지만 자신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그 시선에 차마 잠에서 깬 것을 알릴 수 없었다. 



이한이 나갈 때까지 자는 척하고 있던 지원이 살며시 몸을 일으켰다. 

그가 닫고 나간 문을 말없이 쳐다보던 지원이 책상 서랍을 연다. 그 안에 작은 상자가 하나 들어있다. 



상자 덮개를 열자 요즘은 보기 힘든 테이프가 들어 있다. 

이한이 몰고 다니는 차는 아직도 테이프를 넣는 카오디오가 달려 있다. 요즘 세상에 테이프라니. 



상자 안의 테이프에는 지원이 얼마 전에 부른 노래가 녹음되어 있다. 음질이 좋지는 않지만 마음을 담아 부르고 녹음한 것이다. 

하지만 아직 이한에게 이걸 건네줄 마음의 준비는 되지 않았다. 당분간 건네주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건네줄 수 있을 때, 그때는 진짜 웃으면서 고맙다는 말까지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정말 바보 같아.”



지원이 작게 중얼거렸다.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는 모른다. 형에게 하는 말인지, 아니면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지원이 등에 걸쳐진 카디건을 손에 들었다. 그리고 냄새를 맡아본다. 카디건에 옅게 땀 냄새가 풍겨나고 있었다. 형의 땀 냄새였다.




“더블데이트?”



혜주의 말에 은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 이번 주말에 더블 데이트하자. 은서 씨 남친 얼굴도 한번 볼 겸.”

“싫은데.”



단박에 싫다는 은서의 대답에 혜주가 새초롬해진다.



“도대체 얼마나 잘난 남자길래 얼굴도 보여주기 싫다는 거야?”



은서의 남자친구가 엄청 궁금한 혜주였다. 회사 내에서 은서와 제일 친한 사람이 바로 혜주다. 

입사 동기에 계속 같은 부서에 있었고, 같은 입사 동기들이 결혼하며 회사를 그만둘 때도 꿋꿋하게 남아 있는 유일한 동기 여직원이기도 했다.



“부끄러움을 많이 타.”

“남친이? 어머, 의외다. 은서 씨 그런 스타일 좋아하는구나.”



은서에게 남친이 생겼다는 걸 아는 순간부터 혜주의 안테나는 계속 은서를 향해 있었다. 참견하고 싶어 발가락이 간질거리는 것이다.

은서에게 소개팅을 가장 많이 시켜준 것도 다름 아닌 혜주다.

그런데 자기가 해준 소개팅남들은 모두 퇴짜 놓은 은서가 고른 남친이 과연 어떤 남자인지 너무 궁금한 것이다.



“이번 주말에 태경 씨 오프라고 했거든. 그러니까 우리 더블데이트 하자. 같이 놀이동산 가서 신나게 놀고 저녁 같이 먹고 그 후에 각자 헤어지면 되잖아.”


“싫다니까.”


“왜? 왜 싫어? 은서 씨 남자 친구 너무 멋있어서 내가 딴 맘 품을까 봐? 나도 남친 데리고 나간다니까. 우리 태경 씨 엄청 멋있어. 은서 씨, 우리 태경 씨 아직 못 봤지?”



보진 못했어도 그 ‘태경 씨’에 대해 얘기는 엄청나게 들어서 본 것보다 더 훤하게 아는 은서다. 

키 크고, 잘생기고, 게다가 의사인 그 남자 친구에 대해 혜주가 점심시간에 같이 밥을 먹을 때마다 신이 나서 말해대는데 모르면 바보인 것이다. 

이제는 그 ‘태경 씨’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 지까지, 색깔 취향까지 속속들이 다 알게 된 은서다. 

왜 남의 남자친구가 좋아하는 색깔을 본인이 알아야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흐응.”



혜주의 뾰로통한 표정이 은서가 뭔가 있다고 직감했다. 분명 뭔가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더블데이트에 목을 맬 리가 없다.



“혹시 무슨 문제 있어? 남자친구하고?”



은서가 살짝 물어본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혜주의 얼굴이 금방 변한다.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여자인 것이다, 혜주는.



“그게 실은… 요즘 시들하거든.”

“뭐가?”


“태경 씨하고 나하고.”

“계속 데이트한다며.”


“만나기는 계속 하는데 태경 씨가 바쁘고 그러니까 잠깐 얼굴 보고 차 마시고 밥 먹고 하는 게 다고.”



혜주가 주변을 살짝 살펴본다. 오후의 사무실은 조금 한가하다. 외근을 나간 직원들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같이 안 잔 지 오래됐어.”

“응?”



혜주의 말에 은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뭔가 이상한 말을 들은 것 같아서였다.



“섹스 안 한 지 오래됐다고.”

“섹스?”


“같이 모텔 갈 시간이 없어. 차 한잔 마시면 바로 일어나 버리니까. 주말에 오프 때 약속 잡자고 해도 다른 약속 있다고 빼기 일쑤고, 만난 지 몇 달 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권태기가 온 것 같아서 좀 그래.”


“그래서?”


“이번 주말에 은서 씨하고 더블데이트 있다고 미리 말해버렸거든. 은서 씨 커플하고 같이 데이트 하면서 태경 씨도 자극 좀 받았으면 좋겠고. 

이런 건 원래 처음 시작하는 커플이 막 뜨겁고 하트를 뿌려대고 그런 거잖아. 

그러니까 그 하트의 열기를 우리도 좀 나눠 받아서 같이 뜨거워지자고. 놀이동산에서 그 열기 받아서 저녁 먹고 바로 모텔로 직행할 수 있게.”


“.....”



이쯤 되면 은서도 거절할 말이 없다. 

혜주가 이렇게까지 부탁하는데, 어떻게 보면 말하기 부끄러운 것까지 말하며 부탁하는데 들어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그럴까?”

“정말? 은서 씨 고마워!”


“그런데 저녁 너무 늦으면 곤란해. 이한 씨 저녁에 일이 있거든.”

“알았어. 저녁식사 시간은 은서 씨가 결정해. 좀 일찍 먹으면 되지 뭐.”


“그럼 한 시 정도에 만나서 다니다가 다섯 시에 저녁 먹을까? 너무 이르나?”

“괜찮아, 괜찮아. 그럼 이번 주말에 약속한 거다.”


“알았어.”

“와, 기대된다, 나 더블데이트 처음이거든.”



신이 나서 꺅꺅 거리는 혜주에게 은서가 어색하게 웃었다. 이런 걸로 이렇게 좋아할 줄 몰랐다.



“왜 이렇게 시끄러워?!”



마침 밖에서 들어오던 과장 윤기수가 은서와 혜주를 보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때 이한에게 맞아 병원에 입원한 후에 며칠 만에 퇴원해서 다시 회사로 돌아온 윤 과장은 그날 이후부터 이유 없이 은서에게 틱틱거리고 있었다. 괜히 서류를 퇴짜 놓고, 퇴근 직전에 일거리를 주는 식으로 노골적으로 괴롭히는 것이다. 


그래도 은서는 상관없었다. 그 심술에 일일이 상대해줄 마음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개는 혼자서 짖으라 하고 사람은 사람의 길을 가면 된다는 식으로 은서가 일명 ‘윤 과장 개무시’를 시전하고 있는 중이었다.



“과장님 또 저러신다. 왜 그러는지 은서 씨 이유 알아?”

“아니, 몰라.”


“그게 지금 부인하고 별거 중인가 봐.”



혜주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정보를 얻는지 은서는 그게 더 신기했다.



“별거?”

“왜 있잖아. 바람피우다가 들켰대.”


“바람?”

“총무과에 있는 새파란 애 건드렸는데 걔가 임신해서 윤 과장 부인 찾아가서 다 불었나 봐.”


“우와.”



은서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임신까지 했다면 자기에게 수작을 걸 때 이미 다른 여직원을 건드리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건드린 여직원이 한둘이 아닌가 봐. 그래서 지금 다른 곳으로 전출 갈 거라는 말도 있어.”



그 마수에 은서 자신도 당할 뻔했다. 

그때 만약 이한이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강제적으로 당해서 지금 혜주가 말하는 ‘건드린 여직원’에 은서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은서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윤 과장을 쳐다봤다.

책상에 앉아서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는 윤 과장이 새삼 불쌍하게 보이고 있었다. 왜 저렇게 인생을 살까 싶은 것이다.



*



“더블… 데이트요?”



은서가 꺼낸 말에 이한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미 은서가 예상했던 표정이다. 이 남자라면 분명 난색을 표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자신과 함께 있어도 이렇게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남자가 다른 커플과 같이 데이트하는 건 엄청나게 어려운 미션일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다른 사람들에게 사귀고 있는 남자를 소개해야 할 때가 올 것이고, 오히려 혜주와 먼저 만나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고 은서가 생각했다. 밝고 쾌활한 혜주라면 분명히 분위기를 잘 이끌어줄 것이다.



“이한 씨가 싫으면 취소할게요.”

“아니요, 괜찮아요. 난 다만 내가 좀 그러니까.”


“뭐가요?”

“왜 있잖아요,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기엔 내가 좀 그러니까.”


“또 나왔다 자기 비하. 난 그런 사람 제일 싫더라. 왜 자신감이 없어요? 사람이 좀 당당해져 봐요. 링 위에서는 그렇게 당당하고 멋지던 사람이 왜 그래요? 뭐가 꿀리는 게 있어요? 잘생겼지 멋있지 착하지 주먹 세지, 체력 좋지, 대체 뭐가 모자란데요?”


“.....”



은서의 말에 이한의 얼굴이 붉어진다. 은서가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이 왠지 엄청나게 부풀려져 있는 것 같아서였다.

‘잘생기고, 멋지고, 착하고, 주먹 세고, 체력 좋고’에서 잘생겼다는 것과 멋지다는 것, 그리고 착하다는 건 빼주면 좋겠지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콧대 높은 채은서 마음을 한 번에 사로잡은 남자. 그거면 어깨 펼 만하지 않아요?”



너무나 당당하게 말하는 은서의 미소에 이한이 저도 모르게 그만 웃고 말았다. 

이 여자가 말하면 정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 여자가 말하면, 말해주면 정말 자신이 그런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러네요.”



이한이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정말 그런 남자가 되자고.



*



가볍게 부딪친 입술이 꾹 아랫입술을 누르자 그녀의 입술이 살짝 벌어진다. 

그 벌어진 입술 사이로 따뜻한 혀가 살며시 밀려들어갔다. 

이제 제법 키스가 능숙해진 이한 씨다. 그리고 은서 씨 또한 이 달콤한 키스에 완전히 길들여졌다. 

처음에는 서로 입술만 부딪쳐도 그 상태로 어찌할 줄 몰라 했는데 요 며칠 사이에 제법 혀를 섞는 법이 능숙해진 것이다. 



물론 우리 변이한 씨께서 가끔씩 야한 비디오를 보며 키스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는 것은 비밀. 

아무래도 서툰 것이 은서에게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아서 능숙한 남자가 되자는 생각에 나름 열심히 공부(?) 중인 것이다. 



그리고 그 공부에 도움을 주는 것은 다름 아닌 배달 가게의 사장 형이다. 

문제의 콘돔을 주머니에 넣어주어 두 사람의 첫날밤을 본의 아니게 성사시킨 그 인물 말이다. 



배달이 끝나고 편의점 알바를 가기 전에 이한을 붙들고 일명 연애 ABC를 가르쳐주는 그 가게 사장 형이 모태 솔로라는 것 역시 일급비밀.

지갑에는 항상 콘돔이 준비되어 있지만 막상 그것을 사용할 여친은 없어서 결국에는 눈물을 머금고 업소 아가씨를 찾는다는 비극의 가게 사장 형이지만 말이다. 



살며시 혀를 휘어 감고 쪽 빨아들이자 은서의 입술에서, “으응…”하는 신음이 딸려 나온다.

타액과 함께 삼켜지는 숨결에 이한이 그녀의 입술을 더 깊게 눌러본다. 

코가 부딪친다. 입술을 깊게 묻으려니 코가 부딪치는 것이다.

이한이 살짝 옆으로 얼굴을 돌려본다. 각도를 살짝 비끼자 입술이 더 깊게 맞물려진다.



“으응.”



은서의 손이 이한의 가슴 옷자락을 살며시 쥔다. 그녀 역시 질세라 이한의 숨결을 빨아들이고 있는 중이었다.



“하아.”



깊게 맞물려져 있던 두 사람의 입술이 살며시 떨어지며 반짝거리는 타액이 실처럼 이어졌다가 끊어진다.

은서의 입술이 타액으로 반들반들 빛나는 것을 보며 이한이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다. 반짝반짝 빛나는 사랑스러운 여자.



“오늘 밤에.”

“미안해요. 오늘은 집에 들러야 해서.”


“그럼 내일 점심에나 보는 거예요?”



주말이 아닌 평일에는 은서도 회사에 출근해야 하고, 그리고 이한도 오전 알바에 가야 해서 새벽에 만나지 못한다.

낮의 점심 식사, 밤에 두 시간 정도 얼굴 보는 것이 평일의 전부이지만 이한이 집에 있는 지원을 챙겨줘야 하는 날이면 그나마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차라리 같이 살면 좋겠다, 라고 은서가 생각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지원이만 없다면 차라리 이 남자와 같이 살고 싶어진 것이다.



일명 동거. 그녀의 집은 혼자 살기에는 너무 넓다. 그렇다고 팔고 좁은 집으로 가는 것은 그녀가 싫다.

왜냐하면 이 집은 부모님의 추억이 남아 있는 집이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것은 이 집에서 이한과 함께 사는 것이다. 

밤에 이한이 돌아오고, 그리고 아침에 둘이 같이 눈을 뜨고 같이 출근하고,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집세를 내지 않아도 되면 이한이 알바를 줄여도 된다. 아니, 천천히 자격증을 준비하며 알바가 아닌 정식 직장을 찾아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은서가 그 말을 꺼내지 않는 것은 ‘지원’이 있는 이상 이 남자가 그걸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 남자는 절대 동생을 혼자 두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지원이’도 은서의 집으로는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무슨 애 딸린 재혼남과 결혼하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그 비슷한 경우가 아닐까 하고 은서가 생각했다. 

느낌이 딱 그런 것이다. 애 딸린 재혼남. 

그 ‘애’를 아직 한 번도 만나 보지 못했다는 것이 진짜 문제 중의 문제. 

도대체 어떤 성격의 ‘애’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이한과 사귀기 시작한 지 어느새 한 달. 한 달 동안 지원을 보고 싶다고 몇 번 졸랐지만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핑계는 지원이 낯을 가린다는 것.



‘도대체 낯을 가리면 얼마나 가린다는 거야? 지가 무슨 히키코모리야? 그래서 세상을 어떻게 살겠어?’



하지만 그런 말을 차마 할 수 없는 것은 거기에서 은서 자신도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한을 만나기 전의 은서 자신의 모습이 딱 그 모습인 것이다.



사람을 꺼리는 모습. 사람과 깊게 사귀는 것을 은연중에 거부하면서 혼자만의 공간에 웅크리고 있는 모습. 

사람에게 상처받을 것이 두려워서, 또 혼자 남겨질 것이 두려워서 차라리 혼자 있겠다 웅크리고 있던 것이 자신의 모습이 아니던가. 

어쩌면 지원도 그런 건지 모른다고 은서가 생각했다. 



은서가 그런 성격이 된 것은 부모님의 죽음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원도 엄마를 잃었다. 

그럴지도 모른다고 은서가 혼자서 납득을 해본다. 그렇지 않으면 열이 받기 때문이다.

정말 이 남자와 함께 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열이 받는 것이다.



“그럼 우리 언제 해요?”



은서의 말에 이한의 얼굴이 붉어진다.



“그, 그게.”

“주말에만 하는 거예요?”


“그건.”

“싫다… 주말 부부도 아니고.”


“미안해요.”



이한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간다. 은서와 계속 함께 있고 싶은 건 이한 역시 마찬가지지만 자신의 어깨에는 지워진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럼 지금 여기서 해줄래요? 그럼 봐줄게요.”

“여, 여기서요?”



이한이 주변을 둘러봤다. 한적한 주차장이긴 해도 아직 해도 다 지지 않았다. 

차 유리창에 선팅도 되어 있지 않아서 누가 밖에서 들여다보기라도 하면 낭패가 따로 없다.



“밖에서는 잘 안보일 거예요.”


“.....”



유혹해오는 은서의 목소리에 이한이 침을 삼켰다. 그녀의 말이 맞다.

주말 외에는 두 사람이 긴 시간을 보낼 시간이 없다. 일주일에 이틀은 사랑하기에 너무 부족한 시간이긴 했다.



“그러면.”



이한의 손이 그녀의 무릎으로 내려가자 은서가 작게 신음하며 그 품에 얼굴을 기댄다. 

손이 무릎에서 미끄러져 내려와 가만히 그녀의 치마를 걷어 올렸다. 

매끈한 스타킹을 신은 그녀의 허벅지에 그의 손가락이 닿는 순간 그녀가 뜨거운 숨을 그의 가슴에 토해 놓는다. 

손가락이 천천히 올라와 그녀의 허벅지를 문지르더니 점점 더 위로 올라온다.



“으응.”



가쁜 숨을 내쉬는 은서의 입술에 이한의 입술이 덮여졌다. 

허벅지를 만지던 손이 그녀의 아랫배까지 더듬어 올라와 그대로 스타킹 안으로 들어가더니 팬티 안으로 밀고 들어간다. 

살며시 벌어진 허벅지 안으로 손가락이 침범하는 순간 은서가 그를 꽉 끌어안았다. 처음 시도 하는 카섹스였다.



*



한강 둔치 주차장의 가장 구석진 자리에 세워진 낡은 포터 더블캡 안을 괜히 들여다보고 지나갈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간혹 그 낡은 트럭이 조금 흔들린다 하더라도 애써 거기에 관심을 갖고 가까이 다가가 무슨 일이 있는지 확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만약 굳이 확인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눈치가 없거나, 아니면 오지랖이 넓거나, 그것도 아니면 정말 할 일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으응.”



좌석이 뒤로 젖혀져 있었다. 더블캡의 장점은 앞좌석이 뒤로 젖혀진다는 것에 있다. 

젖혀진 좌석에 비스듬히 누운 은서의 입술에서 새어나오는 신음은 이한에게 모두 삼켜지고 있었다. 

이한의 손가락이 젖은 수풀을 헤치며 그녀의 둔덕을 천천히 내려갔다.

손가락이 살갗에 닿을 때마다 은서의 몸이 열기로 달아오른다.



- 섹스 안 한지 오래됐어.



은서가 문득 혜주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그 말을 할 때의 그녀의 표정은 어두웠었다. 

그 마음을 은서는 이해할 수 있다. 몰랐으면 모를까, 한번 알고 난 다음에는 기다려지는 것이다.

한번 그 뜨거움의 기쁨을 알고 나면 이 순간이 기다려지는 것이다. 



야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나누는 이 뜨거운 교감의 시간이 기다려지지 않을 연인이 어디에 있을까. 

서로의 숨결을 느끼며, 서로의 체온에 비로소 안도하는 이 시간. 

서로가 서로의 것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이 시간이 기다려지지 않는 연인이 과연 있을까.



이 남자를 만나기 전에는 은서도 그렇게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굳이 섹스가 필요하냐고. 섹스를 위해 만나는 것도 아니고 사랑에 굳이 섹스가 동반될 이유가 있냐고 말하곤 했던 그녀였다. 

하지만 과거의 그녀에게 지금의 그녀가 충고해줄 수 있다면 과거로 돌아가 그녀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줄 것이다.



‘해본 사람만 알아. 모르면 말을 말아.’


그렇다. 해본 사람만 아는 것이다.


“으응… 응.”



은서의 허리가 파르르 떨린다. 이한의 손이 그녀의 민감한 돌기를 만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급한 신음은 모두 이한에게 삼켜지고 있었다. 

섞이는 숨결 속에 그녀가 뜨거운 신음을 함께 내뱉었다. 

이한의 입안에서 은서의 혀가 정신없이 그의 혀를 휘어 감았다.

허벅지 사이에서 일어나는 격렬한 자극에 그녀의 전신이 짜릿하게 달궈지는 중이었다.



“으응…!”



은서가 이한의 팔에 꽉 매달렸다. 그녀의 다리가 벌어지며 그 안에서 움직이는 손가락이 속도를 더해간다.



“으응… 이, 이제… 이제.”



이제 그만 들어와 달라는 말이 차마 나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짧은 목소리로도 이한이 그녀가 원하는 것을 알아차렸다. 

한 달 만에 장족의 발전을 이룬 것이다.



“옷, 구겨질 텐데.”



이 와중에도 은서의 옷이 구겨질 것이 걱정인 이한의 허리띠 버클을 은서가 풀었다.



‘물티슈 없는데 어떡하지?’



바지를 내리고 은서에게 몸을 포개면서도 이한이 걱정을 떨쳐내지 못한다.



‘하긴 콘돔을 쓰니까 많이 흐르진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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